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됩니다. 치즈가 갈라지지 않게 하는 요령과 곁들이는 것들, 그리고 이 두 요리가 어떻게 스위스의 상징이 됐는지까지.
퐁뒤는 사실 마케팅이 만든 국민 음식입니다
알프스 목동들이 오래전부터 먹던 음식일 것 같지만, 퐁뒤가 스위스 전체의 국민 요리가 된 건 1930년대의 일입니다. 스위스 치즈 조합이 치즈 소비를 늘리려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거든요. 각 가정에 레시피를 우편으로 보냈는데, 4인분부터 100인분까지 분량을 나눠 실었습니다. 한 번에 많은 치즈를 쓰는 일을 당연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죠. 나중에는 퐁뒤는 맛있고 기분을 좋게 한다는 뜻의 표어까지 만들어 밀었습니다. 그 전까지 퐁뒤는 프랑스어권 일부 지역의 향토음식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 캠페인은 단순한 판촉을 넘어섰습니다. 언어와 지역으로 갈린 나라에서 한 냄비를 함께 찍어 먹는 그림이 통합의 상징이 됐거든요. 지금도 스위스에서 퐁뒤는 겨울과 모임의 음식입니다.
퐁뒤에 쓰는 치즈
스위스 산악 치즈 두 가지를 섞는 것이 정석입니다. 감칠맛이 깊은 쪽과 순하고 잘 늘어나는 쪽을 반반씩 쓰면 균형이 맞아요. 프리부르 지방에는 아예 반반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은 배합이 있습니다. 그뤼에르와 그 지역 치즈를 정확히 절반씩 섞는 방식이에요. 양은 넉넉히 먹는다면 한 사람당 200g으로 잡습니다. 갈아서 준비하면 훨씬 고르게 녹아요. 프랑스 쪽에서는 스위스 치즈 대신 콩테를 쓰는데, 그쪽이 더 부드럽고 단맛이 돕니다. 구하기 어렵다면 그뤼에르에 에멘탈이나 고다를 섞어도 충분히 됩니다.
퐁뒤 냄비에 들어가는 것들이에요.
갈라지지 않게 하는 두 가지
첫째, 화이트와인을 씁니다. 치즈 200g에 100ml 정도예요. 와인의 산이 치즈 단백질을 풀어줘서 매끈하게 이어집니다. 신맛이 뚜렷한 드라이 화이트가 좋고, 없으면 레몬즙을 조금 섞은 물로도 어느 정도 됩니다. 둘째, 간 치즈에 옥수수전분을 한 큰술 버무려 넣습니다. 전분이 지방 방울을 붙잡아 기름이 뜨는 것을 막아줘요. 마늘을 자른 면으로 냄비 안을 문질러두면 향이 은은하게 깔립니다. 스위스에서는 마지막에 키르슈라는 체리 증류주를 한 숟갈 넣는데, 향도 향이지만 알코올이 치즈를 조금 더 묽게 만들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약한 불에서, 8자로 젓기
끓이면 갈라집니다. 약한 불에서 치즈를 조금씩 나눠 넣으며 녹이세요. 한 줌 넣고 다 녹은 다음에 다음 줌을 넣는 리듬이 좋습니다. 저을 때는 원을 그리며 돌리지 말고 8자나 지그재그로 젓습니다. 한 방향으로만 돌리면 치즈 덩어리가 통째로 돌기만 하면서 기름과 분리돼요. 그래도 갈라졌다면 불을 살짝 올리고 빠르게 저으면 대개 다시 붙습니다. 그것도 안 되면 전분물을 조금 더 만들어 부으세요. 식탁에 올린 뒤에도 아주 약한 불은 계속 유지해야 굳지 않습니다.
냄비 바닥의 눌은 부분이 진짜입니다
다 먹고 나면 냄비 바닥에 얇게 눌어붙은 치즈가 남습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이걸 수녀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스위스 식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분이에요. 노릇하게 구워져 고소하고 바삭합니다. 태우지 말고 노릇할 정도로만 두었다가, 나무 주걱으로 통째로 떼어내 나눠 드세요. 이걸 모르고 냄비를 그냥 물에 담그는 것은 스위스 사람이 보면 안타까워할 일입니다. 참고로 퐁뒤를 먹다가 빵을 냄비에 빠뜨리면 벌칙을 주는 전통이 있는데, 그것도 이 요리가 놀이에 가까운 자리라는 걸 보여줍니다.
라클렛이라는 이름은 긁는다는 뜻입니다
스위스 발레 지방의 음식입니다. 프랑스어로 긁다라는 뜻의 단어에서 이름이 왔어요. 산에서 일하던 목동들이 모닥불 옆에 치즈 반 덩이를 세워두고, 녹은 면을 칼로 긁어 감자 위에 올려 먹던 데서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값싸고 배부르고 여름에도 잘 상하지 않는 것, 그게 치즈와 감자였던 거죠. 긁어 먹는 방식이 하도 특징적이라 그 동작이 그대로 요리 이름이 됐고, 19세기 후반에는 그 치즈 자체의 공식 명칭이 됐습니다. 요리 이름이 재료 이름이 된 흔치 않은 경우예요.
그 이름이 곧 이 치즈입니다.
라클렛은 장비 없이도 됩니다
전용 그릴이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내열 접시를 넣고 치즈를 두껍게 썰어 녹이면 돼요. 프라이팬도 됩니다. 삶은 감자를 먼저 준비해 두고, 치즈가 녹는 동안 곁들임을 접시에 담으세요. 치즈는 녹자마자 먹어야 하므로 순서가 반대가 되면 곤란합니다. 라클렛 치즈를 구하기 어렵다면 고다나 그뤼에르로도 비슷한 맛이 나요. 다만 오래 숙성한 치즈는 기름이 뜨기 쉬우니 숙성이 짧은 쪽을 고르세요.
장비 없이 녹여도 되는 것들이에요.
곁들임은 신맛이 핵심입니다
삶은 감자와 코르니숑 같은 작은 피클, 절인 양파, 그리고 얇게 썬 햄이 정석입니다. 이 중에 빠뜨리면 안 되는 건 신맛이에요. 녹은 치즈는 서너 입이면 물리는데, 피클 하나가 그걸 매번 되돌려 놓습니다. 없으면 오이지나 양파 절임으로도 충분해요. 퐁뒤에 찍어 먹는 빵은 겉이 단단한 흰 빵이 좋습니다. 속이 너무 부드러우면 꼬치에서 떨어져요. 하루 지난 바게트가 오히려 낫고, 한 입 크기로 자르되 껍질이 한 면씩은 붙어 있게 자르면 잘 안 빠집니다.
무엇을 마실까
현지에서는 퐁뒤에 화이트와인이나 따뜻한 차를 마십니다. 요리에 쓴 것과 같은 드라이 화이트가 가장 무난해요. 산미가 기름기를 끊어주기 때문에 실제로 잘 맞습니다. 찬물이나 탄산음료는 피하라는 말이 오래 전해지는데, 배가 불편해진다는 이유예요. 의학적으로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지에서는 여전히 그렇게 합니다. 확실한 건 따뜻한 음료가 실제로 더 편하다는 것 정도입니다. 술을 안 마신다면 사과주스나 홍차가 무난해요.
양과 시간 계획
퐁뒤는 한 사람당 치즈 200g, 빵 150g 정도로 잡습니다. 네 명이면 치즈 800g이니 생각보다 많이 듭니다. 준비 시간은 치즈를 가는 데 15분, 녹이는 데 15분쯤이에요. 미리 갈아두면 훨씬 수월합니다. 라클렛은 치즈를 한 사람당 200~250g, 감자는 4~5개로 잡으세요. 두 요리 다 식탁에 앉은 뒤에 완성되는 구조라, 곁들임을 먼저 다 차려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치즈를 녹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자리를 뜰 수 없거든요.
남은 것은 이렇게
퐁뒤가 남으면 식으면서 단단하게 굳습니다. 버리지 마세요. 다음 날 약한 불에 우유를 조금 넣고 저으면 다시 녹아요. 그대로 파스타 소스로 쓰거나, 빵 위에 발라 구우면 훌륭한 한 끼가 됩니다. 삶은 감자에 부어도 좋고요. 라클렛 치즈가 남았다면 그냥 잘라 먹어도 되고, 샌드위치에 넣어 구우면 잘 녹아 편합니다. 냄비는 뜨거운 물에 담가두면 눌은 부분이 쉽게 떨어지지만, 그 전에 바닥의 눌은 치즈를 먼저 먹었는지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