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밖에서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을 버텨야 합니다. 그 조건에서 고르는 법과 지켜야 할 시간, 차·숙소·비행기에서 두는 법, 그리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요리까지.
기준은 수분입니다
밖에서 버티는 힘은 결국 수분이 얼마나 적으냐로 갈립니다. 수분이 적으면 세균이 자랄 여지도 적고 형태도 잘 유지되거든요. 단단한 치즈가 가장 안정적이고, 반경성이 그다음이에요. 생치즈나 부드러운 치즈는 물이 많아 밖에서 빨리 상하고, 더위에 형태도 무너집니다. 가져간다면 아이스박스 안에서만 다루세요. 그리고 이건 위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브리를 한여름 피크닉에 가져가면 상하기 전에 이미 흘러내려서 먹을 수 없게 돼요.
수분이 적어 밖에서 잘 견디는 것들이에요.
두 시간을 기억하세요
상하기 쉬운 음식은 상온에 두 시간까지가 기준이고, 기온이 32도를 넘으면 한 시간으로 줄어듭니다. 단단한 치즈는 수분이 적어 이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라 네 시간 정도까지는 안전 쪽으로 봅니다. 파르미지아노나 체다처럼 아주 단단한 것은 더 오래 버티고요. 다만 안전한 것과 맛있는 것은 별개예요. 더운 날 오래 나가 있던 치즈는 기름이 배어 나오고 표면이 땀을 흘려 맛이 확실히 떨어집니다. 여름 한낮이라면 시간을 세는 대신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먹을 만큼만 덜어내는 쪽이 편합니다.
가져가기 좋은 형태
덩어리째 가져가면 겉만 마르고 속은 멀쩡합니다. 잘라놓은 조각보다 훨씬 잘 버텨요. 표면적이 작을수록 유리하다는 단순한 원리입니다. 왁스를 입힌 치즈는 그 자체가 포장이라 특히 편하고요. 미리 자르지 말고 현장에서 자르되, 도마 대신 쓸 납작한 것 하나와 작은 칼만 챙기면 충분합니다. 소금물에 담긴 치즈는 국물이 새기 쉬우니 뚜껑이 확실한 통에 넣거나 아예 다른 것을 고르세요.
덩어리째 가져가기 좋은 쪽입니다.
아이스박스 안에서 자리를 정하세요
치즈를 아이스팩에 직접 붙여 두면 그 면만 얼어서 질감이 상합니다. 반대로 위쪽에 두면 뚜껑을 열 때마다 온도가 오르내려요. 가장 좋은 자리는 아이스팩과 한 겹 떨어진 중간층입니다. 종이나 수건으로 한 번 감싸 완충을 두면 됩니다. 그리고 음료와 같은 칸에 두지 마세요. 음료는 자주 꺼내게 되고 그때마다 찬 공기가 빠져나갑니다. 하루짜리 나들이라면 음료용과 음식용을 나누는 것이 번거로워 보여도 결과가 확실히 다릅니다.
차로 옮길 때는 세우는 순간이 문제입니다
달리는 동안은 에어컨이 도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차를 세운 다음이에요. 주차한 차 안은 한 시간이면 바깥보다 20도 넘게 올라가고, 그 상승의 대부분이 처음 30분에 일어납니다. 흐린 날에도 10도 이상 오르고요. 장을 보고 차에 실어둔 채 한 군데만 더 들르는 그 30분이 정확히 가장 위험한 구간입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는 것이 가장 확실해요. 치즈는 마지막에 사고, 차를 세워야 한다면 들고 내리세요. 아이스박스를 쓴다면 에어컨 바람이 닿는 실내 쪽이 낫습니다. 트렁크에는 그 바람이 가지 않으니까요.
숙소에 며칠 둘 때
하루 나들이와 며칠 여행은 조건이 다릅니다. 객실 냉장고가 있으면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게 믿을 물건은 아니에요. 호텔 미니바는 집 냉장고보다 높은 온도로 맞춰두는 경우가 많고, 소리가 나지 않는 종류는 방 온도에 성능이 좌우돼서 더운 날에는 생각만큼 차가워지지 않습니다. 다행히 단단한 치즈에는 애초에 냉장이 필수가 아닙니다. 서늘하고 볕이 들지 않는 곳이면 며칠은 버텨요. 사 온 비닐봉지에 그대로 두는 것만 피하면 됩니다. 습기가 갇혀 겉이 미끈해지거든요. 종이에 싸서 가방 안쪽처럼 온도가 덜 흔들리는 자리에 두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앞에서 말한 것과 같아요. 안전한 것과 맛있는 것은 별개라, 날이 지날수록 겉은 마르고 기름은 배어 나옵니다.
며칠을 두어야 한다면 이만큼 단단한 쪽으로 갑니다.
비행기로 가져갈 때
장거리 비행은 문 앞에서 문 앞까지 열두 시간이 넘습니다. 그 시간을 냉장 없이 버티는 것은 결국 앞에서 고른 단단한 쪽뿐이에요.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기내 공기는 아주 건조해서 습도가 10~20%까지 내려가고 그보다 낮아지는 구간도 있습니다. 사막보다 마른 공기예요. 종이에만 싸두면 도착할 때쯤 겉이 딱딱하게 말라 있습니다. 종이로 한 겹 싸고 그 위에 비닐을 느슨하게 둘러 수분이 날아가는 것만 막아주세요. 진공 포장된 것을 뜯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요. 다만 치즈를 들여올 수 있는지는 나라마다 다르고 규정도 바뀝니다. 이건 치즈 문제가 아니라 규정 문제라, 출발 전에 가는 나라의 공식 안내를 확인하세요.
곁들임도 상온을 견디는 것으로
크래커, 바게트, 견과, 말린 과일, 꿀, 올리브는 전부 냉장이 필요 없습니다. 치즈만 아이스박스에 넣으면 짐이 훨씬 가벼워져요. 신선한 과일을 가져간다면 사과나 배처럼 무르지 않는 쪽이 좋습니다. 포도도 잘 견디고요. 반면 딸기나 복숭아는 눌리고 무릅니다. 잼이나 꿀은 작은 병에 덜어 가면 무게가 크게 줄어요. 그리고 신맛 나는 것을 하나 챙기세요. 피클이나 올리브가 없으면 짠 치즈만 계속 먹게 되어 금세 물립니다.
곁들임과 함께 상온을 견디는 쪽이에요.
캠핑이라면 불을 쓸 수 있습니다
불이 있다면 선택지가 확 넓어집니다. 굽는 치즈를 가져가면 프라이팬에 기름 없이 올려 양면만 노릇하게 구우면 끝이에요. 상온에서도 잘 버티고 조리도 간단해서 캠핑에 특히 잘 맞습니다. 반경성 치즈는 빵 사이에 끼워 팬에 눌러 구우면 훌륭한 한 끼가 되고요. 감자를 호일에 싸서 불에 묻어 익힌 다음 치즈를 올려 녹이는 것도 좋습니다. 스위스에서 라클렛을 먹는 방식이 원래 그거였어요. 산에서 모닥불 옆에 치즈를 세워두고 녹은 면을 긁어 감자에 올리는 것.
불 위에서 진가가 나오는 것들이에요.
겨울 캠핑은 또 다릅니다
추울 때는 상하는 걱정이 없는 대신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치즈가 너무 차가워져 향이 닫히고 딱딱해져요. 영하에 오래 두면 얼어서 질감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오히려 아이스박스가 보온 상자 역할을 합니다. 밖에 두지 말고 안에 넣어두세요. 먹기 전에는 주머니에 잠깐 넣어두거나 불 가까이에 두어 온도를 올리면 맛이 확 살아납니다. 겨울 캠핑에서 퐁뒤나 라클렛이 잘 맞는 것도 이런 이유예요. 어차피 데워 먹을 거라면 차가운 것이 문제가 안 되니까요.
돌아올 때
밖에 오래 나가 있던 치즈는 표면이 땀을 흘린 상태일 수 있습니다. 젖은 겉면을 닦고 종이에 새로 싸서 냉장고에 넣으세요. 원래 포장에 도로 넣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미 상태가 달라져 있거든요. 반쯤 녹았다가 굳은 치즈는 질감이 예전 같지 않으니 그대로 먹기보다 요리에 쓰는 편이 낫습니다. 갈아서 파스타나 그라탕에 쓰면 차이가 거의 안 나요. 그리고 하루 종일 더위에 노출됐던 부드러운 치즈는 아깝더라도 버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짐을 줄이는 조합
가장 가벼운 구성을 하나 제안하자면 이렇습니다. 단단한 치즈 한 덩이 200g, 바게트 하나, 견과 한 줌, 말린 무화과 몇 개, 그리고 작은 칼. 아이스박스 없이 등에 지고 걷는 백패킹에서도 서너 시간은 문제없고, 무게는 다 합쳐 500g이 안 됩니다. 여기에 와인이나 맥주 하나만 더하면 야외에서 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한 상이 돼요. 반대로 부드러운 치즈와 신선한 과일을 챙기기 시작하면 아이스박스와 보냉제가 따라오고 짐이 갑자기 무거워집니다. 무엇을 포기할지 먼저 정하면 나머지는 쉽습니다.
짐을 줄일 때 남길 만한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