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 칼 세트를 사기 전에 읽어보세요. 실제로 쓸모 있는 것은 몇 개 안 되고, 대신 그중 두어 개는 정말로 다릅니다.
사실 집에 있는 칼로 됩니다
치즈 때문에 새로 사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부드러운 치즈는 칼에 들러붙어 모양이 뭉개지는데, 칼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물기를 닦고 자르면 훨씬 깔끔해요. 한 번 자를 때마다 닦으면 더 좋습니다. 이 요령 하나가 전용 칼 여러 자루보다 효과가 큽니다. 그리고 칼보다 중요한 건 칼날의 상태예요. 무딘 칼로는 어떤 치즈도 예쁘게 잘리지 않습니다. 새 도구를 사기 전에 있는 칼을 한 번 갈아보세요.
있으면 정말 달라지는 두 가지
첫째는 가는 강판입니다. 줄톱처럼 생긴 마이크로플레인 종류가 좋아요. 단단한 치즈를 눈처럼 갈아주기 때문에 같은 양으로도 맛이 훨씬 넓게 퍼집니다. 파스타에 올려보면 박스형 강판으로 간 것과 완전히 다른 음식이 돼요. 둘째는 감자칼입니다. 단단한 치즈를 얇게 저며 샐러드에 올리면 갈아 넣는 것과 전혀 다른 질감이 생깁니다. 이 둘은 치즈 전용 도구도 아니고 값도 싸지만, 치즈를 먹는 방식 자체를 바꿔줍니다.
이 둘을 들이면 특히 달라지는 치즈들이에요.
구멍 뚫린 칼과 와이어
칼날에 구멍이 뚫린 것은 부드러운 치즈가 달라붙는 면적을 줄이려는 설계입니다. 손잡이 두 개 달린 와이어도 같은 목적이에요. 와이어는 특히 부드러운 치즈를 뭉개지 않고 자르는 데 강합니다. 칼날이 두께가 없으니 밀어내는 힘 자체가 없거든요. 흰곰팡이 치즈나 블루치즈를 자주 산다면 하나쯤 쓸모가 있지만, 그 전에 뜨거운 물 요령부터 써보세요. 대개 그걸로 충분합니다.
칼에 잘 들러붙는 쪽입니다.
단단한 치즈는 자르지 않고 쪼갭니다
초경성 치즈를 얇게 썰려고 하면 부서지고 손목만 아픕니다. 원래 짧고 뭉툭한 칼을 결에 밀어 넣어 쪼개는 치즈예요. 파르미지아노 전용 칼이 아몬드 씨처럼 생긴 것도 그래서입니다. 얇은 쪽으로 파고들고 두꺼운 쪽이 쐐기 역할을 해서, 자르는 게 아니라 벌리는 거예요. 현지에서 40킬로그램짜리 원반을 열 때는 이 칼 두 자루를 지름의 양 끝에 박아 넣고 힘을 줘서 통째로 갈라냅니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불규칙한 조각이 이 치즈의 정석적인 모양이고, 결이 살아 있어 맛도 더 잘 느껴집니다.
썰지 않고 쪼개서 먹는 쪽이에요.
치즈 하나를 위해 발명된 도구도 있습니다
스위스에 테트 드 무안이라는 치즈가 있습니다. 원반을 세워두고 위를 깎아 얇은 주름을 만들어 먹는데, 1981년에 니콜라 크레부아지에라는 사람이 그걸 쉽게 하는 도구를 발명했어요. 축을 치즈 한가운데 박고 날을 빙 돌리면 꽃잎 같은 조각이 말려 올라옵니다. 이름은 그의 큰딸이 지었습니다. 모양이 꾀꼬리버섯을 닮았다고 해서 지롤이라고 불렀대요. 첫해에 300개만 주문해뒀는데 15,000개가 팔렸고, 잊혀 가던 그 치즈는 그 도구 하나로 되살아났습니다. 도구가 음식의 운명을 바꾼 흔치 않은 사례예요.
강판은 종류마다 쓰임이 다릅니다
박스형 강판의 굵은 면은 피자나 그라탕처럼 녹여 쓸 때 좋습니다. 굵게 갈려야 뭉치지 않고 고르게 녹아요. 가는 마이크로플레인은 그대로 뿌려 먹을 때 씁니다. 회전식 그레이터는 식탁에 올려두고 각자 갈아 쓰기에 편하고, 손이 칼날에 닿지 않아 아이와 함께 쓰기에도 안전해요. 세 개를 다 살 필요는 없습니다. 요리를 많이 하면 박스형, 파스타에 뿌려 먹는 일이 많으면 마이크로플레인 하나면 됩니다.
굵게 갈 것과 곱게 갈 것입니다.
보드는 나무가 낫습니다
대리석 보드는 사진이 잘 나오지만 차가워서 치즈가 좀처럼 실온이 되지 않습니다. 향을 열어야 하는데 계속 닫아두는 셈이에요. 나무 도마가 실용적으로 낫고, 이미 집에 있을 확률도 높습니다. 다만 마늘이나 생선을 썰던 도마는 피하세요. 나무는 냄새를 머금습니다. 치즈용으로 쓸 판을 하나 정해두는 편이 안전해요. 대리석에도 쓸모는 있습니다. 한여름에 부드러운 치즈가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야 할 때는 오히려 유리합니다.
칼보다 보관 도구에 돈을 쓰세요
치즈 맛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자르는 방식이 아니라 보관 상태입니다. 전용 칼 여섯 자루 세트를 살 돈이면 유산지 한 통과 뚜껑 있는 통 두어 개를 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치즈 전용 종이가 있으면 더 좋고요. 두 겹 구조라 습기는 조금씩 내보내면서 마르는 것은 막아줍니다. 온라인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고 값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이 셋만 갖춰도 치즈가 훨씬 오래 제 상태를 유지합니다.
없어도 되는 것들
종류별 칼 여섯 자루 세트, 유리 돔, 치즈 전용 대리석 판, 온도계, 미니 숙성고. 대부분 자리만 차지합니다. 특히 여섯 자루 세트는 실제로는 두 자루만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굳이 산다면 낱개로 필요한 것만 고르세요. 유리 돔은 예쁘지만 밀폐가 되어 치즈에는 좋지 않고, 미니 숙성고는 치즈를 직접 숙성시킬 게 아니라면 냉장고 채소칸으로 충분합니다.
예산별로 고른다면
2만 원 안쪽이라면 마이크로플레인 하나. 이것만으로도 파스타와 샐러드가 달라집니다. 5만 원쯤 쓸 수 있다면 여기에 유산지와 보관 통, 그리고 감자칼을 더하세요. 치즈를 오래 두고 먹는 사람에게는 이 조합의 효용이 가장 큽니다. 10만 원까지 간다면 부드러운 치즈용 와이어 커터와 나무 서빙보드를 더하면 됩니다. 그 위로는 취향의 영역이에요. 치즈에 쓰는 돈은 도구보다 치즈 자체에 쓰는 편이 거의 언제나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