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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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종류, 한 번에 정리하기

생치즈·흰곰팡이·세척·경성·블루. 이름은 많아 보여도 만드는 방식 몇 가지로 갈립니다. 종류별 성격과 대표 치즈, 그리고 분류의 기준까지 정리했어요.

분류의 기준은 결국 수분입니다

치즈를 나누는 국제 기준이 실제로 있습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코덱스)는 치즈에서 지방을 뺀 나머지 중 물이 몇 퍼센트인지로 굳기를 정해요. 이 값이 67%를 넘으면 연성, 54~69%면 반경성, 49~56%면 경성, 51% 미만이면 초경성입니다. 구간이 서로 겹치는 게 이상해 보이지만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예요. 치즈는 자연물이라 딱 떨어지지 않고, 같은 이름의 치즈도 만든 곳마다 조금씩 다르니까요. 결국 우리가 아는 온갖 종류 차이는 대부분 물을 얼마나 뺐느냐에서 갈립니다. 물이 많으면 부드럽고 빨리 상하고, 적으면 단단하고 오래 갑니다.

생치즈 — 숙성하지 않은 치즈

굳히자마자 먹는 치즈입니다. 숙성을 거치지 않아 맛이 순하고 우유향이 그대로 남아요. 수분이 많아 잘 상하니 사면 며칠 안에 먹는 게 좋습니다. 빵에 발라 먹는 치즈들도 실은 이 무리인데, 크림을 더해 만들어 더 되직하고 진합니다. 이 무리는 유럽만의 것도 아닙니다. 인도의 파니르, 멕시코의 케소 프레스코, 중동의 라브네가 전부 같은 갈래예요. 우유를 오래 두고 먹어야 한다는 문제는 어디서나 같았으니까요. 재미있는 건 이 무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치즈라는 점이에요. 화려한 숙성 치즈들이 이름값은 높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매일 먹는 건 대개 이쪽입니다. 치즈가 처음이라면 여기서 시작하면 실패가 없어요.

마트 유제품 칸에서 흔히 마주치는 것들이에요.

흰곰팡이 연성 치즈 — 껍질째 먹는 치즈

겉면에 흰 곰팡이를 피워 안쪽부터 부드럽게 익힙니다. 이 곰팡이는 단백질을 조금씩 분해하는데, 그래서 숙성이 진행될수록 겉에서 안쪽으로 부드러워져요. 갓 만든 것은 가운데가 분필처럼 단단하고, 잘 익은 것은 실온에 두면 흐를 듯 부드러워지며 버섯 같은 향이 올라옵니다. 하얀 껍질도 함께 먹는 것이 정석이에요. 껍질이 곧 이 치즈를 만든 주역이라, 껍질을 걷어내면 향의 절반이 사라집니다.

껍질째 먹어보기에 좋은 것들입니다.

세척 치즈 — 껍질을 씻어가며 키운 치즈

숙성하는 동안 겉을 소금물이나 술로 계속 닦아냅니다. 그 습기에서 자라는 균이 껍질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특유의 냄새를 만들어요. 그 균은 사람 피부에도 사는 종류와 가까운 친척이라, 발 냄새 같다는 표현이 나오는 게 근거 없는 비유가 아닙니다. 다행히 냄새는 세도 맛은 그보다 훨씬 순하고 고소한 것이 이 무리의 공통점이에요. 향만 맡고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냉장고에 넣을 때는 따로 밀폐해 두세요. 안 그러면 옆에 있던 우유까지 같은 냄새가 납니다.

이 갈래 중에서는 냄새가 순한 편이라 처음 열어보기 좋습니다.

반경성 치즈 — 가장 무난한 무리

물을 어느 정도 빼고 몇 달쯤 숙성한 치즈들입니다. 잘리고, 녹고, 그냥 먹어도 되는 만능형이에요. 마트 치즈 코너에서 가장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것도 이 무리입니다. 숙성이 짧으면 우유맛이 남아 부드럽고, 길어질수록 단단해지며 캐러멜 같은 단맛과 고소함이 올라와요. 같은 이름의 치즈를 숙성 개월 수만 다르게 사서 나란히 놓고 먹어보면, 숙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한 번에 이해됩니다.

숙성 개월 수만 달리해 나란히 놓고 먹어보기 좋은 것들이에요.

경성 치즈 — 오래 숙성한 단단한 치즈

수분을 최대한 빼고 길게 숙성시켜 단단해진 치즈입니다. 숙성이 길수록 단백질이 잘게 쪼개지며 감칠맛이 진해지고, 아미노산이 결정으로 맺혀 아삭한 알갱이가 씹히기도 해요. 그 알갱이는 소금이 아니라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이 굳은 것입니다. 씹혔다면 그 치즈가 충분히 오래 익었다는 신호예요. 갈아서 요리에 쓰거나 얇게 썰어 그대로 먹습니다. 물이 적어 잘 상하지 않기 때문에, 냉장고에 오래 두고 조금씩 쓰기에는 이 무리가 가장 좋습니다.

갈아 쓰거나 얇게 썰어 먹는 쪽으로는 이런 이름들이 있어요.

블루치즈 — 푸른곰팡이를 넣은 치즈

치즈 속에 푸른곰팡이를 자라게 해 특유의 알싸한 풍미를 냅니다. 곰팡이가 자라려면 공기가 필요해서, 만들 때 긴 바늘로 치즈를 여러 번 찔러 숨구멍을 냅니다. 잘랐을 때 보이는 푸른 결이 대개 그 바늘 자국을 따라 나 있어요. 짠맛이 강한 편이라 꿀이나 단 과일과 함께 내면 훨씬 먹기 편해집니다. 같은 블루치즈라도 강도 차이가 아주 크니 순한 것부터 올라가는 걸 권합니다.

같은 블루라도 강도가 제각각이니 순한 것부터 골라보세요.

구멍이 있는 치즈 — 그리고 구멍이 사라지는 이유

만화에 나오는 그 치즈입니다. 숙성 중에 프로피온산균이라는 균이 이산화탄소를 내는데, 그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구멍이 돼요. 그런데 2015년 스위스 연구기관이 CT로 130일 동안 치즈 속을 들여다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가스가 뭉치려면 시작점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하던 것이 우유에 섞여 들어간 아주 작은 건초 부스러기였다는 겁니다. 최근 스위스 치즈의 구멍이 눈에 띄게 줄어든 이유도 여기 있어요. 착유가 기계화되고 위생이 좋아지면서 건초 먼지가 우유에 안 들어가게 된 겁니다. 너무 깨끗해서 구멍이 사라진 셈이죠.

구멍으로 이름이 난 것은 이쪽입니다.

늘려서 만드는 치즈 — 파스타 필라타

굳힌 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담가 엿가락처럼 늘였다 접었다 반복하는 방식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늘린 반죽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무리의 치즈는 결이 생기고, 손으로 찢으면 세로로 갈라집니다. 피자 위에서 길게 늘어지는 것도 이 결 때문이에요. 부라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물건입니다. 늘린 껍질로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크림과 치즈 조각을 채워 넣은 거예요. 원래는 남은 자투리를 알뜰하게 쓰려던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비싸게 팔립니다.

손으로 찢으면 결이 세로로 갈라지는 것들이에요.

유청으로 만드는 치즈 — 버리던 것에서 나온 치즈

치즈를 만들면 노란 물이 잔뜩 남습니다. 유청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도 단백질이 남아 있어요. 그걸 다시 데워 건져낸 것이 리코타입니다. 이름 자체가 다시 익혔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우유를 굳혀 만든 게 아니라 치즈 만들고 남은 것으로 만든 물건이라, 학술적으로는 치즈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맛은 담백하고 살짝 달아요. 요리에 넣어도 좋고 꿀만 뿌려도 디저트가 됩니다.

이 방식에서 나온 치즈가 하나 있습니다.

소금물에 담가 보관하는 치즈

냉장고가 없던 시절 더운 지역에서는 치즈를 소금물에 담가 보관했습니다. 그 방식이 그대로 남은 것이 이 무리예요. 짠맛이 뚜렷하고, 물에 잠겨 있어 수분이 유지되며, 숙성 향은 크게 나지 않습니다. 사고 나서도 담겨 있던 소금물을 버리지 않는 편이 좋아요. 그 안에 도로 담가 두면 훨씬 오래 갑니다. 짠맛이 부담스러우면 먹기 전에 찬물에 20~30분 담가두면 됩니다. 그중 하나는 구워도 녹지 않는 특이한 성질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물에 잠긴 채로 파는 것들이에요.

가공치즈는 어디쯤에 있나요

위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무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미 만든 치즈를 녹여 유화제를 넣고 다시 굳힌 것, 즉 가공치즈예요. 낱장 슬라이스와 삼각형 포장 치즈가 대표적입니다. 20세기 초에 상하지 않고 멀리 보낼 수 있는 치즈를 만들려다 나온 발명품이고, 실제로 그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했습니다. 균일하고, 잘 녹고, 오래 가요. 다만 숙성에서 오는 복잡한 향은 없습니다.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쓰임이 다른 물건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라면에 올릴 것과 와인에 곁들일 것이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