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코너 앞에서 막막했다면. 입문자가 실패하지 않는 치즈와 사는 법·보관법, 그리고 처음에 자주 하는 걱정들을 정리했어요.
처음엔 순한 것부터
치즈는 향이 셀수록 호불호가 갈립니다. 첫 치즈로 블루치즈나 향이 강한 세척 치즈를 고르면 치즈는 내 취향이 아니구나 하고 끝나기 쉬워요. 실제로 치즈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어쩌다 가장 센 것을 먼저 만난 경우입니다. 순한 것으로 입을 익히고 한 단계씩 올라가는 편이 훨씬 즐겁습니다. 그리고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예요. 지금 못 먹는 치즈도 두세 달 뒤에는 맛있어질 수 있습니다.
순한 쪽에서 고르면 이런 것들이에요.
첫 장바구니에 넣을 만한 것들
구체적으로 고르자면 이렇습니다. 부드러운 쪽에서 하나, 단단한 쪽에서 하나, 그리고 요리에 쓸 것 하나. 생모짜렐라는 우유맛이 그대로 남아 있어 토마토만 있으면 한 접시가 되고, 숙성이 짧은 고다는 그냥 잘라 먹기에도 샌드위치에 넣기에도 좋습니다. 파르미지아노는 한 덩이 사두면 파스타·샐러드·수프까지 두루 쓰여서 오래 갑니다. 여기에 크림치즈 하나를 더하면 아침 식사가 해결돼요. 이 넷이면 처음 한 달은 충분합니다.
부드러운 것 하나, 단단한 것 하나, 요리용 하나로 짜면 이렇습니다.
그다음 한 걸음
순한 치즈가 익숙해졌다면 흰곰팡이 치즈로 넘어가 보세요. 냉장고에서 꺼내 30분만 두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됩니다. 차가울 때는 단단하고 밍밍하던 것이, 실온이 되면 가운데가 흐를 듯 부드러워지고 버섯 같은 향이 올라와요. 하얀 껍질도 함께 먹는 게 정석입니다. 여기서 치즈의 폭이 확 넓어집니다. 이걸 즐기게 되면 그다음은 오래 숙성한 경성 치즈, 그다음이 블루치즈 순서로 가면 무리가 없어요.
다음 칸에서 기다리는 것들입니다.
냄새와 맛은 다릅니다
치즈를 처음 접할 때 가장 자주 하는 오해입니다. 냄새가 센 치즈가 맛도 센 것은 아니에요. 껍질을 씻어가며 숙성한 치즈들은 향은 강렬한데 입에 넣으면 의외로 고소하고 순합니다. 반대로 겉보기에 얌전한 오래된 체다가 훨씬 자극적일 수 있어요. 그러니 냄새로 판단하지 말고 아주 조금이라도 입에 넣어보는 편이 낫습니다. 치즈 코너에서 시식을 권한다면 거절하지 마세요. 설명 열 줄보다 한 조각이 빠릅니다.
얼마나 사야 할까
한 번에 여러 종류를 조금씩 사는 게 좋습니다. 두세 명이 곁들여 먹는다면 한 종류에 50~100g이면 충분해요. 큰 덩어리를 하나 사서 냉장고에서 말리는 것보다, 작게 여러 개가 훨씬 즐겁습니다. 특히 부드러운 치즈는 시간이 갈수록 향이 강해지므로 작게 사서 빨리 먹는 편이 낫고, 단단한 치즈는 반대로 큰 덩어리로 사도 됩니다. 잘 안 상하고, 조각으로 사는 것보다 그램당 값도 쌉니다.
어디서 사면 좋을까
대형마트 치즈 코너가 가장 접근하기 쉽습니다. 요즘은 브리·까망베르·고다·체다 정도는 어지간한 곳에 다 있어요. 종류를 넓히고 싶으면 창고형 매장이 유리합니다. 덩어리가 커서 그램당 값이 훨씬 싸고, 파르미지아노처럼 오래 가는 치즈라면 큰 것을 사도 부담이 없습니다. 온라인 전문점은 선택지가 넓지만 여름철 배송은 신중하게 고르세요. 그리고 어디서 사든 포장 뒷면의 숙성 개월 수와 원산지를 한 번 보는 습관을 들이면, 몇 달 뒤에는 같은 가격으로 훨씬 나은 것을 고르게 됩니다.
우유만 마시면 배가 아픈데 괜찮을까요
이 걱정 때문에 치즈를 피하는 분이 많은데 대부분은 괜찮습니다. 유당은 치즈를 만들 때 대부분 유청과 함께 빠져나가고 숙성하면서 더 줄어들어, 오래 숙성한 단단한 치즈에는 사실상 남아 있지 않아요. 우유가 부담스럽다면 숙성이 긴 쪽부터 시도해 보세요.
오래 숙성한 쪽이 특히 안심하고 먹을 만해요.
보관은 숨 쉬게
치즈는 살아 있는 식품이라 완전히 밀폐하면 상하기 쉽습니다. 랩으로 꽉 싸지 말고 유산지나 종이에 싼 뒤 느슨하게 담아 냉장하세요. 랩에 직접 닿으면 그 부분이 눅눅해지고 플라스틱 냄새가 뱁니다. 자리는 냉장고에서 온도가 가장 안정적인 채소칸이 낫습니다. 냄새가 강한 치즈만 따로 통에 넣으면 냉장고 전체에 향이 배는 것도 막을 수 있어요. 그리고 자를 때마다 칼을 닦으면 서로 다른 치즈의 곰팡이가 옮겨 붙지 않습니다.
먹기 30분 전에 꺼내기
이것 하나만 지켜도 맛이 달라집니다. 차가우면 지방이 굳어 향 성분이 날아오르지 못해서, 비싼 치즈를 사고도 밍밍하게 먹게 되거든요. 먹기 30분에서 1시간 전에 꺼내 두세요. 부드러운 치즈일수록 차이가 큽니다.
곰팡이가 폈어요
단단한 치즈라면 곰팡이가 난 자리에서 사방과 아래로 2.5cm쯤 넉넉히 도려내고 나머지는 먹어도 괜찮습니다(미국 농무부 권고). 수분이 적어 곰팡이가 속까지 파고들기 어렵거든요. 반면 부드러운 치즈나 잘게 썬 치즈에 폈다면 통째로 버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수분이 적어 도려내고 먹을 수 있는 쪽이에요.
껍질은 먹어도 되나요
치즈에서 자란 껍질이면 먹고, 왁스나 천처럼 씌워놓은 것이면 벗깁니다. 흰곰팡이 껍질은 특히 함께 드세요. 파르미지아노의 딱딱한 겉껍질은 씹어 먹진 않지만 국물에 넣으면 감칠맛이 확 살아납니다.
껍질째 먹는 쪽과, 껍질을 국물에 쓰는 쪽입니다.
처음 한 달, 이렇게 해보세요
치즈를 알아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비교입니다. 매주 두 종류씩 사되 그중 하나는 이미 먹어본 것으로 하세요. 아는 맛이 기준선이 되어 새 치즈의 성격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먹을 때마다 한 줄이라도 적어두면 더 좋아요. 좋았는지, 짰는지, 무엇과 먹었는지 정도면 충분합니다. 두 달쯤 지나면 자기가 어떤 방향을 좋아하는지 알게 됩니다. 고소한 쪽인지 산뜻한 쪽인지, 부드러운 쪽인지 씹히는 쪽인지. 그때부터는 치즈 코너가 막막한 곳이 아니라 고르는 재미가 있는 곳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