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도감

샤퀴테리 보드와 치즈 보드, 뭐가 다를까

같은 판을 두고 부르는 이름이 둘인 게 아닙니다. 무게중심이 다릅니다.

이름부터 — 고기 가게에서 온 말입니다

샤퀴테리(charcuterie)는 프랑스어입니다. 옛 프랑스어 char(살, 지금은 chair)와 cuit(익힌)이 합쳐지고 가게를 뜻하는 -erie 가 붙었어요. 글자 그대로는 '익힌 고기'이고, 원래는 그걸 만들어 파는 가게와 그 직업(charcutier)을 가리켰습니다. 특히 돼지고기를 다루는 곳이었어요. 발음은 영어로는 '샤르-쿠-터-리' 처럼 가운데에 힘을 주고, 프랑스어로는 /ʃaʁ.ky.tʁi/ 입니다. 즉 이 말에는 원래 치즈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 주인공이 다릅니다

샤퀴테리 보드는 염장하거나 훈제한 고기가 주인공이고 치즈는 곁들임입니다. 치즈 보드는 반대로 치즈가 주인공이고 나머지가 그걸 받쳐요. 그래서 사는 순서부터 달라집니다. 앞의 것은 고기를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는 치즈를 찾고, 뒤의 것은 치즈를 먼저 정하죠. 요즘은 한 판에 둘 다 올리는 것이 흔해서 경계가 흐려졌는데, 그걸 틀렸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을 중심에 둘지는 정하고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둘 다 주인공이면 판이 그냥 복잡해져요.

고기가 주인공이면 치즈는 이렇게 고릅니다

염장 고기는 짜고 기름집니다. 여기에 짠 치즈를 또 올리면 짠맛이 겹쳐서 몇 점 먹고 물려요. 그래서 순하고 부드러운 것을 한 자리 두는 것이 좋습니다. 프로슈토에 생 모짜렐라나 부라타를 곁들이는 이탈리아식 조합이 정확히 그 원리예요. 여기에 단단한 것을 하나 더하면 씹는 맛이 갈립니다. 하몽에 만체고를 곁들이는 스페인식도 같은 구성이고요. 짠 것 위에 짠 것을 겹치지 않는다 — 이 하나만 지켜도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고기가 중심일 때 자리를 잘 잡는 것들이에요.

하몽이 짜기만 했다면, 옆이 비어 있었던 겁니다

호텔 조식 접시에 하몽을 몇 점 담아 왔다가 두 점째에 물을 찾게 되는 일, 꽤 흔합니다. 하몽이 나빴다기보다 옆이 비어 있었던 쪽에 가까워요. 하몽을 종이처럼 얇게 저며 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얇을수록 입에 넣자마자 지방이 녹기 시작하고, 녹은 지방이 짠맛을 감칠맛 쪽으로 데려가거든요. 좋은 것은 손에 들고만 있어도 가장자리가 번들거리기 시작할 만큼 지방이 무릅니다. 그런데 냉장고에서 막 나온 채로, 두툼하게, 게다가 혼자 놓이면 그 과정이 일어나기 전에 소금이 먼저 도착해요. 치즈에서 이미 겪어본 일입니다. 차가우면 지방이 굳어 향이 올라오지 못하고, 블루치즈는 아예 소금 덩어리처럼 느껴지죠. 먹기 30분 전에 꺼내라는 그 규칙이 여기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이 옆에 무엇을 놓느냐예요.

하몽 옆에 놓을 치즈, 그리고 피할 치즈

먼저 만체고입니다. 하몽과 같은 스페인 땅이고 양젖이라 기름진 고소함의 결이 닮았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닮은 쪽이 아니라 어긋나는 쪽입니다. 만체고는 짠맛이 절제돼 있거든요. 같은 양젖이라도 페코리노 로마노처럼 소금이 앞서는 치즈였다면 하몽 옆에서 소금 위에 소금이 됩니다. 짰던 기억이 있다면 숙성이 짧은 세미쿠라도를 고르세요. 버터처럼 순합니다. 다음은 부라타나 모짜렐라예요. 이쪽은 닮은 것으로 맞추는 게 아니라 씻어내는 쪽입니다. 하몽 한 점에 부라타를 한 숟갈 얹으면 터져 나온 크림이 짠맛을 데리고 내려가요. 프로슈토에 생 모짜렐라를 곁들이는 이탈리아식이 오래전에 찾아낸 답이 그겁니다. 마지막은 리코타입니다. 리코타는 짠맛이 거의 없어서 곁들이는 것 쪽으로 맛이 끌려가는 치즈예요. 그래서 하몽 옆에 두면 리코타에서 하몽 맛이 납니다. 구운 바게트에 리코타를 두툼하게 바르고 하몽 한 장을 걸치면 그걸로 끝이에요. 반대로 피할 것도 분명합니다. 오래 숙성해 짠맛이 세진 고다나, 소금물에서 익어 짠맛이 속까지 밴 페타는 하몽과 같은 방향이라 서로를 밀어내요. 고다를 쓰겠다면 어린 쪽으로 고르세요.

하몽의 짠맛을 받아내는 방향이 저마다 다른 것들이에요.

치즈가 주인공이면 고기는 한 가지면 됩니다

반대 방향에서는 고기를 줄이는 것이 요령입니다. 염장 고기를 두세 종 올리면 짠맛과 기름기가 판 전체를 덮어서, 정작 치즈의 차이가 안 느껴져요. 한 가지만, 얇게, 조금. 그러면 치즈 사이를 옮겨 다닐 때 입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향이 아주 센 치즈 옆에는 아예 두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서로 잡아먹어요. 고기를 뺄 자리가 아깝다면 그 자리는 절임이나 견과가 더 잘 씁니다.

고기 없이도 샤퀴테리 보드라고 부를 수 있나

말 자체가 고기라서 엄밀히 따지면 아닙니다. 그런데 영어권에서는 vegetarian charcuterie board 라는 표현이 실제로 쓰여요. 이름을 두고 다툴 일은 아니고, 진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고기를 빼면 그 자리가 비는데 무엇으로 채우느냐예요. 고기가 하던 일은 짠맛과 기름기, 그리고 씹는 맛이었으니 그 셋을 나눠 맡기면 됩니다. 올리브나 절임이 짠맛을, 견과가 기름기와 씹는 맛을 대신해요. 치즈를 한 종 더 늘리는 것보다 이쪽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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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이면 얼마나 — 계산은 이름과 상관없습니다

샤퀴테리 보드라고 부르든 치즈 보드라고 부르든 인원수 계산은 같습니다. 곁들임으로 낼 때 한 사람당 30~50g, 치즈가 식사를 대신하면 100~150g이에요. 다만 고기가 함께 올라간다면 치즈는 범위의 아래쪽으로 잡으세요. 고기가 그만큼을 대신 채우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고기가 없는 판이라면 위쪽입니다. 종류 수는 어느 쪽이든 세 가지에서 다섯 가지 사이가 적당하고, 이건 사람이 늘어도 그대로예요.

인원수별로 얼마나 사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