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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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치즈 라벨 읽는 법

포장 뒷면 몇 줄만 볼 줄 알면 고르는 눈이 확 달라집니다. 식품유형·원산지 도장·숙성 개월 수·지방 표시를 읽는 법을 정리했어요.

먼저 식품유형 칸을 봅니다

국내 제품이라면 뒷면 표에 식품유형이라는 칸이 반드시 있습니다. 여기가 가장 많은 것을 알려줘요. 우유를 굳혀 만든 것은 그냥 치즈라고 적힙니다. 그 치즈를 녹여 유화제를 넣고 다시 굳힌 것은 가공치즈예요. 낱장으로 포장된 슬라이스 치즈가 대표적입니다. 치즈 성분이 더 적으면 아예 치즈류가 아닌 다른 유형으로 적히는데, 그러면 이름에 치즈가 들어 있어도 법적으로는 치즈가 아닙니다. 앞면의 큰 글씨는 상품명일 뿐이고, 정체를 알려주는 건 이 한 줄입니다.

자연치즈라는 표기가 사라진 이유

예전 포장에서는 자연치즈라는 유형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요. 식약처가 유형 이름에서 자연이라는 글자를 뺐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자연치즈를 첨가물이 전혀 안 든 자연식품이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일이 잦았거든요. 실제로는 그저 원유를 굳혀 만들었다는 분류일 뿐인데 말이죠. 여기에 해외 분류 기준과 어긋나 수출입에서 계속 문제가 생긴 것도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원유로 만든 것은 치즈, 그 치즈를 완전히 녹여 재성형한 것만 가공치즈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치즈와 치즈가 아닌 것을 가르는 숫자, 18%

피자나 냉동식품에서 치즈맛이 나는데 어딘가 다르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이 숫자 때문입니다. 국내 기준에서 가공치즈로 인정받으려면 치즈에서 온 유고형분이 18% 이상이어야 해요. 유고형분이란 우유에서 물을 뺀 나머지, 그러니까 유지방과 유단백질 같은 것들입니다. 이 기준에 못 미치면 치즈가 아니라 식용유지가공품으로 분류됩니다. 흔히 모조치즈라고 부르는 것이 이쪽이에요. 식물성 유지와 단백질로 치즈의 질감을 흉내 낸 물건이라 값이 싸고 잘 늘어나지만, 유형 칸을 보면 정체가 바로 드러납니다.

AOP·DOP 도장은 무엇인가요

정해진 지역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만든 것만 그 이름을 쓸 수 있도록 법으로 묶어둔 표시입니다. 프랑스는 AOP, 이탈리아는 DOP, 유럽 공통으로는 PDO라고 씁니다. 1992년에 유럽연합이 제도로 만들었어요. 원료가 되는 우유부터 숙성까지 전 과정이 그 지역 안에서 이뤄져야 하고, 젖소 품종이나 사료까지 규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도장이 붙은 치즈는 어느 것을 사도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처음 사는 치즈라면 이 표시가 실패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단서입니다.

그 도장이 붙는 대표적인 것들이에요.

PDO 옆에 IGP가 있다면 뜻이 다릅니다

비슷하게 생긴 도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IGP, 영어로는 PGI예요. 이건 전 과정이 아니라 생산·가공·준비 중 한 단계만 그 지역에서 이뤄지면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지역 이름을 달고 있어도 묶임의 강도가 다른 거예요. 예를 들어 그라나 파다노는 PDO지만, 어떤 치즈들은 우유는 다른 곳에서 오고 숙성만 그 지역에서 하는 식으로 IGP를 받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맛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라벨의 약자 세 글자가 무엇을 보증하는지는 알고 사는 편이 낫습니다.

이쪽이 IGP 에 해당하는 예입니다.

숙성 개월 수는 곧 맛의 세기입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최소 12개월을 넘겨야 도장을 받고, 그라나 파다노는 9개월입니다. 숫자가 커질수록 감칠맛이 진해지고 아삭한 결정이 늘지만 짠맛도 함께 올라가요. 처음이라면 12~18개월쯤이 무난하고, 24개월이 넘어가는 것은 조금씩 맛보며 올라가는 편이 좋습니다. 30개월이 넘는 것들은 값도 크게 뛰고 성격도 뚜렷해져서, 갈아서 요리에 쓰기보다 그대로 조금씩 먹는 쪽이 어울려요. 같은 브랜드에서 개월 수만 다른 두 개를 사서 나란히 먹어보면 차이가 확실히 보입니다.

개월 수가 곧 세기가 되는 것들이에요.

개월 수 대신 단계 이름이 적힌 치즈도 있습니다

숫자로 숙성을 말하지 않고 단계마다 이름을 붙여둔 치즈가 있습니다. 루아르의 작은 염소치즈 크로탱 드 샤비뇰이 대표적이에요. 원산지 규정이 최소 열흘 숙성을 요구하고, 그 뒤로 이어지는 단계에 각각 이름이 있습니다. 드미섹은 아직 촉촉하고 산뜻한 초기, 블루는 표면에 푸른곰팡이가 앉아 버섯 향이 올라온 상태, 섹은 수분이 빠져 작고 단단해지며 맛이 응축된 상태, 르파세는 숙성한 것을 항아리에 넣어 마무리해 부드러우면서도 향이 강해진 것입니다. 손바닥에 올라가는 같은 치즈인데 열흘짜리와 두 달짜리는 사실상 다른 음식이에요. 라벨에 이 말이 적혀 있으니 취향과 용도에 맞춰 고르면 됩니다. 샐러드에 얹을 것이라면 드미섹, 그대로 조금씩 맛볼 것이라면 더 숙성한 쪽입니다. 숙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가장 짧은 시간에 보여주는 치즈이기도 합니다.

숫자 대신 단계 이름으로 파는 대표가 이 갈래입니다.

지방 45%라고 적혀 있어도 지방이 45%는 아닙니다

수입 치즈에서 자주 보이는 함정입니다. 유럽식 표기는 지방 함량을 건조물 기준으로 적어요. 즉 치즈에서 물을 뺀 나머지 중 지방이 몇 퍼센트냐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45%라고 적힌 까망베르의 실제 지방은 100g당 22g 남짓이에요. 수분이 절반쯤 되니까요. 물이 적은 경성 치즈라면 같은 45% 표기라도 실제 지방은 27g쯤으로 올라갑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적을까요. 치즈는 숙성하면서 물이 빠져 전체 대비 지방 비율이 계속 변하는데, 건조물 기준으로 재면 그 값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드는 사람에게는 훨씬 정직한 숫자인 셈이죠.

그 숫자에 자주 속는 예입니다.

살균유인가 비살균유인가

원재료명에 우유를 살균했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살균하지 않은 우유로 만든 치즈는 원래 우유에 있던 균이 그대로 숙성에 참여해 풍미가 복잡해져요. 파르미지아노처럼 규정상 비살균유로만 만드는 치즈도 있습니다. 오래 숙성하는 단단한 치즈는 낮은 수분과 소금, 긴 숙성 기간이 겹쳐 위험이 크게 줄지만, 임신 중이거나 면역이 약한 상태라면 이 줄을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참고로 수입 통관 기준 때문에 국내에서 파는 연성 비살균 치즈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이 구분이 특히 크게 갈리는 것들이에요.

같은 이름이라고 같은 치즈가 아닙니다

이름이 법으로 보호되는 치즈가 있고 아닌 치즈가 있어요. 체다와 고다는 원래 지명이지만 이름 자체는 묶여 있지 않아서 세계 어디서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와 제조사에 따라 맛 차이가 아주 큽니다. 같은 체다라도 어떤 것은 순하고 어떤 것은 강하게 톡 쏘아요. 반대로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정해진 지역에서 만든 것만 그 이름을 쓸 수 있어서, 어느 것을 사도 성격이 비슷합니다. 이름이 보호되지 않는 치즈를 살 때는 브랜드와 숙성 개월 수를 함께 기억해두면 다음에 같은 맛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원재료명에서 눈여겨볼 것

덩어리 치즈의 원재료명은 대개 짧습니다. 우유, 소금, 응유효소, 종균. 여기에 색을 내는 천연 색소가 들어가기도 해요. 목록이 길어질수록 손이 많이 간 제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슈레드 치즈에 감자전분이나 셀룰로스가 들어 있는 경우가 흔한데, 이건 조각끼리 달라붙지 말라고 넣는 겁니다. 나쁜 건 아니지만 그만큼 덜 녹고 물성이 달라집니다. 그라탱처럼 잘 녹아야 하는 요리라면 덩어리를 사서 직접 가는 편이 결과가 훨씬 낫습니다.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적혀 있습니다

2023년부터 국내 식품 표시가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뀌었습니다. 유통기한은 파는 쪽이 진열해도 되는 기한이고, 소비기한은 보관 방법만 지켰다면 먹어도 안전한 기한이에요. 그래서 같은 제품이라도 소비기한 쪽 날짜가 더 깁니다.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자는 것이 도입 취지였어요. 다만 냉장 우유류는 유통 환경을 개선한 뒤에 적용하기로 해서 2031년까지 시간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날짜는 모두 개봉 전 기준이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한 번 뜯은 치즈는 날짜와 상관없이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30초면 되는 체크리스트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식품유형 칸에서 치즈인지 가공치즈인지 확인하고, 원산지 도장이 있는지 보고, 숙성 개월 수를 확인하고, 원재료명이 짧은지 훑는 것. 여기까지가 30초입니다. 이 습관만 들여도 같은 값에 훨씬 나은 치즈를 고르게 돼요. 그리고 하나 더. 마음에 들었던 치즈는 사진을 찍어두세요. 브랜드·숙성 개월 수·원산지가 함께 남으니 다음에 그 맛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치즈는 이름이 비슷한 물건이 워낙 많아서, 기억에만 의존하면 다음 장보기에서 반드시 헷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