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치즈는 쭉 늘어나고 어떤 치즈는 열을 받아도 그대로일까. 녹는 원리부터 소스가 갈라졌을 때 되살리는 법까지 정리했어요.
치즈가 녹는다는 건 두 가지 일이 겹치는 것입니다
치즈는 물과 단백질로 짜인 그물 안에 지방 방울이 갇혀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단백질 그물을 붙잡고 있는 것이 칼슘이에요. 열을 주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납니다. 굳어 있던 지방이 녹아 흐르기 시작하고, 칼슘이 잡고 있던 단백질끼리의 연결이 느슨해지면서 그물이 늘어나요. 이 둘이 알맞게 겹칠 때 우리가 좋아하는 그 상태, 그러니까 쭉 늘어나면서도 기름이 뜨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요리에서 치즈가 실패하는 경우는 거의 전부 이 균형이 깨진 것이라고 보면 돼요.
어린 치즈는 잘 녹고 오래된 치즈는 갈라집니다
숙성이 짧은 치즈에는 물이 많고 단백질 그물이 아직 느슨해서, 열을 받으면 순순히 늘어납니다. 반면 오래 숙성한 치즈는 물이 빠져나가 단백질이 촘촘하게 뭉쳐 있어요. 그래서 열을 줘도 그물이 잘 풀리지 않고, 대신 지방만 먼저 녹아 빠져나옵니다. 그게 우리가 보는 기름 웅덩이예요. 그러니까 오래 숙성한 치즈가 잘 안 녹는 건 품질 문제가 아니라 구조 문제입니다. 잘 녹기를 바란다면 어린 치즈를, 맛을 보태길 바란다면 오래된 치즈를 고르는 게 맞아요.
어린 쪽부터 오래된 쪽까지 나란히 놓았어요.
피자와 그라탕에 쓰는 치즈
수분이 적당히 있고 숙성이 길지 않아 열을 받으면 단백질이 부드럽게 풀리는 치즈들입니다. 다만 쭉 늘어나는 것과 잘 녹는 것은 다른 성질이에요. 길게 늘어나는 것은 뜨거운 물에서 반죽을 늘려 만드는 모짜렐라 계열의 특기이고, 반경성 치즈는 늘어나기보다 매끈하게 흐르며 고소함을 보탭니다. 그래서 좋은 피자집은 둘을 섞습니다. 한 가지로 다 하려 하면 늘어나긴 하는데 밍밍하거나, 맛은 좋은데 뻑뻑해져요.
맨 앞이 늘어나는 쪽이고, 나머지는 녹여서 맛을 보태는 쪽이에요.
갈아서 감칠맛을 내는 치즈
오래 숙성한 단단한 치즈는 녹아 흐르기보다 맛을 보태는 역할입니다. 파스타나 수프 마지막에 불을 끄고 넣어야 뭉치지 않아요. 치즈와 후추만으로 만드는 카치오 에 페페가 이 성질을 그대로 쓰는 요리입니다. 요령은 온도예요. 끓는 상태에 넣으면 단백질이 먼저 엉겨 덩어리가 되고 기름이 뜹니다. 불을 끄고 냄비 온도가 조금 내려간 뒤에 넣으세요. 그 몇 초 차이가 매끈한 소스와 실패한 소스를 가릅니다.
불을 끄고 넣어야 하는 쪽이에요.
안 녹는 치즈도 있습니다
산으로 굳힌 치즈는 단백질이 이미 단단히 엉켜 있어 열을 받아도 흐르지 않고 모양이 남습니다. 칼슘이 만들어주던 느슨한 연결 대신 다른 방식으로 굳었기 때문에, 열이 풀어줄 것이 애초에 없는 셈이에요. 실패가 아니라 원래 그런 성질입니다. 그래서 라자냐 사이나 디저트에 그대로 넣어 씁니다. 인도의 파니르가 정확히 이 방식이라 카레 속에서도 모양이 살아 있습니다. 만들 때 뜨거운 유청에 한 번 삶아내는 치즈도 같은 이유로 안 녹는데, 이쪽은 아예 굽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 겉만 노릇해지고 속은 쫄깃하게 남아요. 키프로스의 할루미, 브라질의 케이주 코알류가 그런 치즈입니다. 프라이팬에 기름 없이 올려 양면을 구우면 그것만으로 한 접시가 됩니다.
열을 줘도 형태가 남는 쪽입니다.
온도가 전부입니다
대부분의 치즈는 55~65도쯤부터 물러지기 시작합니다. 부드러운 치즈가 먼저, 단단한 치즈가 나중이에요. 여기서 온도를 더 올리면 늘어나던 그물이 오히려 수축하면서 물과 기름을 밀어냅니다. 그게 갈라지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치즈를 다루는 요리는 거의 전부 약한 불에서 합니다. 오븐에서 그라탕을 구울 때도 마지막에만 잠깐 온도를 올려 표면을 노릇하게 하고, 그전까지는 낮은 온도로 속을 데우는 편이 결과가 낫습니다.
소스가 분리되지 않게 하려면
치즈 소스가 기름과 덩어리로 갈라지는 건 대개 불이 셌기 때문입니다. 약불에서 조금씩 나눠 넣고, 파스타 삶은 물처럼 전분이 있는 국물을 함께 쓰면 매끈하게 이어집니다. 전분이 지방 방울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하거든요. 화이트와인이나 레몬즙을 조금 넣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약한 산이 단백질 뭉침을 늦춰줘요. 블루치즈는 조금만 넣어도 존재감이 크니 절반만 넣고 맛을 보세요.
소스로 풀 때 특히 조심할 것들이에요.
구연산나트륨이라는 반칙
치즈 소스를 실패 없이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구연산나트륨을 치즈 무게의 2~4%쯤 넣는 거예요. 이 물질은 단백질을 붙들고 있던 칼슘을 대신 가져가 버립니다. 그러면 단백질이 자유로워져서 스스로 유화제 역할을 하게 되고, 어떤 치즈든 매끈하게 녹아요. 오래 숙성한 체다로도 덩어리 하나 없는 소스가 나옵니다. 사실 이건 새로운 발명이 아니에요. 슬라이스 가공치즈가 그렇게 잘 녹는 이유가 바로 이런 유화염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 하던 일을 집에서 하는 셈이죠.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나초 치즈 소스를 만들어 보면 차이가 확실합니다.
이 반칙이 가장 잘 통하는 치즈입니다.
갈아 파는 치즈와 직접 간 치즈는 다릅니다
봉지에 든 슈레드 치즈에는 대개 감자전분이나 셀룰로스가 섞여 있습니다. 조각끼리 달라붙지 말라고 넣는 건데, 그만큼 녹는 성질이 달라져요. 잘 녹아야 하는 요리, 특히 소스나 퐁뒤에서는 이 차이가 크게 납니다. 덩어리를 사서 직접 가는 편이 결과가 훨씬 낫습니다. 반대로 피자처럼 굽는 요리에서는 차이가 작으니 편한 쪽을 쓰면 돼요. 직접 갈 때는 강판과 치즈를 잠깐 냉동실에 넣었다 쓰면 훨씬 잘 갈립니다.
노릇한 색을 내고 싶을 때
그라탕 위가 예쁘게 갈색이 되려면 단백질과 당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생모짜렐라는 수분이 많고 당이 적어서, 오래 구워도 갈색이 잘 안 나고 물만 나와요. 그래서 피자집에서는 수분을 뺀 저수분 모짜렐라를 쓰거나 다른 치즈를 섞습니다. 집에서 색을 내고 싶다면 파르미지아노나 그뤼에르를 위에 조금 뿌리세요. 빵가루를 함께 뿌리면 더 확실합니다. 마지막 2~3분만 오븐 위쪽 열을 세게 주는 것도 방법이에요.
색이 나는 정도가 서로 다릅니다.
껍질과 자투리도 재료입니다
단단한 치즈의 껍질은 그냥 먹기엔 질기지만 국물에 넣고 끓이면 감칠맛이 우러납니다. 다 쓴 뒤 건져내면 돼요.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파르미지아노 껍질을 모아 두었다가 미네스트로네에 넣습니다. 된장찌개나 미역국에 넣어도 의외로 잘 어울려요. 여러 치즈의 자투리는 한데 갈아 그라탕이나 마카로니에 쓰면 오히려 맛이 입체적입니다. 종류가 섞이면 실패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녹여 쓰는 요리에서는 오히려 그게 깊이를 만듭니다.
껍질까지 버리지 않는 대표가 이것이에요.
이미 갈라졌다면
포기하지 마세요. 대개 되살릴 수 있습니다. 불을 아주 약하게 줄이고 찬물이나 우유를 한 큰술씩 넣으면서 빠르게 저어보세요. 온도를 떨어뜨리면서 수분을 보충하면 다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전분물을 조금 만들어 넣거나, 아예 다른 그릇에 옮겨 믹서로 짧게 갈아버리는 방법도 있어요. 그리고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안 하려면 순서를 바꾸면 됩니다. 불을 먼저 끄고, 치즈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