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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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젖·양젖·물소젖, 우유가 바꾸는 맛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도 어떤 젖을 썼느냐에 따라 색과 향과 진하기가 달라집니다. 우유로 치즈를 읽는 법.

젖이 다르면 무엇이 달라지나

차이는 크게 세 가지에서 옵니다. 지방과 단백질이 얼마나 진한가, 지방 알갱이가 얼마나 큰가, 그리고 어떤 종류의 지방산이 들어 있는가. 첫째는 치즈가 얼마나 진하고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를 정하고, 둘째는 입안에서의 질감을 정하고, 셋째는 향을 정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만들어도 젖이 다르면 전혀 다른 치즈가 나와요. 치즈 라벨에서 원재료가 소젖인지 양젖인지 보는 것만으로도 맛의 절반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젖 — 가장 순하고 폭이 넓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치즈 대부분이 소젖입니다. 지방이 3~4% 정도로 적당하고 맛이 튀지 않아, 순한 생치즈부터 몇 해 묵힌 경성 치즈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어요. 그만큼 만드는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같은 소젖으로 브리도 되고 파르미지아노도 되니까요. 생산량이 많아 값도 가장 안정적입니다. 치즈를 처음 배울 때 소젖 치즈로 기준선을 잡아두면, 나중에 다른 젖으로 만든 치즈를 만났을 때 무엇이 다른지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폭이 넓은 만큼 성격도 제각각입니다.

양젖 — 진하고 고소하고 짭짤합니다

양젖은 소젖보다 지방과 단백질이 훨씬 진합니다. 단백질이 평균 5.7% 로 소젖(3% 남짓)의 두 배 가까이 되고, 지방도 7% 로 역시 두 배쯤이에요. 고형분이 많으면 같은 양의 젖에서 치즈가 더 많이 나옵니다 — 실제로 치즈 수율이 양젖은 15% 안팎이고 소젖은 10% 정도예요. 그런데도 비싼 치즈가 되는 건 애초에 양이 소만큼 젖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계 우유 생산에서 양젖이 차지하는 몫은 1.3% 뿐이고, 그마저 90% 이상이 치즈로 갑니다. 맛은 응축돼 있고, 견과 같은 고소함과 기분 좋은 짠맛이 특징이에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블루치즈 몇 가지가 양젖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진한 젖이라야 곰팡이의 강한 향을 받아낼 수 있거든요.

진한 쪽을 찾는다면 이 갈래예요.

물소젖 — 새하얗고 크리미합니다

물소젖은 지방이 소젖의 두 배 가까이 됩니다. 그래서 물소젖으로 만든 생치즈는 훨씬 크리미하고 입에서 녹는 느낌이 다릅니다. 남부 이탈리아의 모짜렐라가 대표적이에요. 같은 이름이라도 소젖으로 만든 것과 물소젖으로 만든 것은 진하기가 확연히 다르고, 값도 몇 배 차이가 납니다. 포장에 부팔라라고 적혀 있으면 물소젖이라는 뜻이에요. 한 번쯤은 두 가지를 나란히 놓고 먹어볼 만합니다. 설명으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 차이거든요.

소젖으로 만든 것과 나란히 놓고 먹어볼 만합니다.

염소젖 — 상큼하고 개성이 뚜렷합니다

지방 알갱이가 작아 질감이 매끄럽고, 특유의 상큼한 산미와 향이 있습니다. 그 향의 정체는 카프로산·카프릴산·카프르산이라는 지방산인데, 염소젖에는 이것들이 소젖보다 두 배 이상 들어 있어요. 재미있는 건 이 물질들의 이름입니다. 전부 염소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거든요. 사람들이 이 향을 염소의 것으로 알아차린 게 화학이 생기기 훨씬 전이었다는 뜻이죠.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 처음이라면 아주 어린 것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 젖으로 만든 것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 있어요.

넷 말고 다른 젖으로도 만드나

만듭니다. 히말라야에는 야크젖 치즈가 있고 북유럽 사미 사람들은 순록젖으로 치즈를 만들어 왔어요. 중동과 북아프리카에는 낙타젖 치즈가, 발칸반도에는 아주 드문 당나귀젖 치즈가 있습니다. 공통점은 전부 소를 키우기 어려운 땅이라는 거예요. 다만 아무 젖이나 치즈가 되지는 않습니다. 낙타젖처럼 좀처럼 굳지 않는 젖도 있어요.

치즈가 되는 젖과 안 되는 젖 →

색이 다른 이유는 베타카로틴입니다

소젖 치즈는 노르스름하고 염소·양·물소젖 치즈는 눈처럼 하얗습니다. 이유는 풀에 든 베타카로틴이라는 색소예요. 염소와 양과 물소는 이 색소를 몸에서 비타민 A로 바꿔버리기 때문에 젖에 색이 남지 않습니다. 반면 소는 그 변환을 잘 못 해서 색소가 지방에 그대로 남아요. 그래서 소젖 치즈만 노랗습니다. 이걸 알면 마트에서 유용합니다. 하얗다고 광고하는 염소치즈는 원래 하얀 것이고, 아주 노란 체다는 대개 색소를 따로 넣은 것이거든요.

노란 쪽과 하얀 쪽을 견줘보기 좋은 것들이에요.

계절도 맛을 바꿉니다

같은 소에서 짠 젖이라도 봄과 겨울은 다릅니다. 봄과 여름에는 갓 돋은 풀을 먹기 때문에 젖에 색소와 향 성분이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만든 치즈는 색이 더 진하고 향도 복잡해요. 반면 겨울에는 건초와 사료를 먹으니 젖이 담백해지고 색도 옅어집니다. 알프스 지역에서 여름 목장에서만 만든 치즈를 따로 이름 붙여 비싸게 파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계절을 표기하는 치즈를 보게 되면 그건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물건입니다.

계절 차이가 특히 또렷한 것들입니다.

소젖이 부담스럽다면

우유를 마시면 배가 불편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양젖이나 염소젖 치즈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지방 알갱이가 작아 소화가 수월하다는 점, 그리고 단백질 구성이 조금 다르다는 점이 이유로 거론돼요. 다만 유당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유당이 문제라면 젖의 종류보다 숙성 기간이 훨씬 중요해요. 오래 숙성한 치즈는 어떤 젖으로 만들었든 유당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정리하면, 유당이 걱정이면 오래 숙성한 것을, 소젖 자체가 부담이면 양젖이나 염소젖을 시도해 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젖을 바꾸는 길과 숙성으로 푸는 길, 양쪽이 다 있습니다.

유당이 적은 치즈 고르는 법 →

여러 젖을 섞은 치즈도 있습니다

스페인에는 소·양·염소의 젖을 함께 써서 만드는 치즈가 있습니다. 각각의 장점을 조금씩 가져오려는 방식이에요. 소젖의 부드러움, 양젖의 진함, 염소젖의 상큼함이 한 치즈에 들어갑니다. 원래는 규모가 작은 농가에서 있는 젖을 다 모아 쓰던 데서 나온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스타일이 됐어요. 라벨에 세 가지 젖이 함께 적혀 있으면 그런 치즈입니다. 처음 먹으면 어느 쪽 성격도 압도적이지 않아 오히려 접근하기 쉽습니다.

유청으로 만드는 치즈도 있습니다

치즈를 만들고 남은 맑은 물을 유청이라고 하는데, 이걸 다시 데워 굳히면 또 하나의 치즈가 됩니다. 원래 버리던 것에서 시작된 치즈라는 점이 재미있어요. 유청에는 지방이 거의 안 남아 있어서 결과물이 담백하고 가볍습니다. 그래서 요리에 넣거나 디저트로 쓰기에 좋아요. 어떤 젖의 유청을 썼는지에 따라 여기서도 차이가 납니다. 양젖 유청으로 만든 것은 소젖 유청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진하고 고소해요.

치즈를 만들고 남은 것에서 나온 치즈예요.

염소치즈에는 진짜 제철이 있습니다

소는 일 년 내내 젖을 내지만 염소는 다릅니다. 봄에 새끼를 낳고, 그때부터 열 달쯤 젖이 나오다가 겨울이 오면 마릅니다. 그러니까 염소치즈는 원래 겨울에는 존재할 수 없는 음식이었어요. 봄에 나기 시작해 가을에 끝나는 계절 음식이었던 겁니다. 지금은 사육 시기를 나누거나 굳힌 덩어리를 얼려 두는 방법으로 연중 나오지만, 젖 자체가 가장 좋은 때는 여전히 봄에서 초여름입니다. 갓 돋은 풀을 먹은 젖으로 만들어 향이 가장 복잡한 시기예요. 그래서 유럽의 치즈 가게에서는 봄이 되면 염소치즈 자리가 눈에 띄게 넓어집니다. 사실 이건 입문자에게 꽤 쓸모 있는 정보입니다. 셰브르를 처음 먹어볼 생각이라면 4월에서 6월 사이를 노리세요. 같은 값에 가장 좋은 것을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봄여름에 맛이 오르는 쪽이에요.

마트에서 확인하는 법

원재료명 첫 줄만 보면 됩니다. 우유라고만 적혀 있으면 소젖이고, 양유·산양유·물소유처럼 따로 적혀 있으면 그 젖이에요. 여기서 한국어 표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산양유는 양젖이 아니라 염소젖입니다. 털을 얻으려고 기르는 면양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이고, 산양은 염소예요. 영어로도 sheep 과 goat 로 갈리는 다른 동물입니다. 그래서 산양유로 만들었다고 적힌 제품은 페코리노 쪽이 아니라 셰브르 쪽이에요. 이 한 글자 차이로 기대한 맛과 전혀 다른 것을 사게 되는 일이 생각보다 흔합니다. 수입 제품이라면 영어나 현지어 표기를 봐야 하는데, 양은 sheep 또는 pecora, 염소는 goat 또는 chèvre, 물소는 buffalo 또는 bufala입니다. 사실 이름만으로도 짐작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페코리노는 이탈리아어로 양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고, 셰브르는 프랑스어로 염소라는 뜻 그 자체입니다. 치즈 이름의 상당수가 실은 그 동물의 이름입니다.

산양유 표기 때문에 자주 뒤바뀌는 두 가지입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