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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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별 대표 치즈, 유럽 한 바퀴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영국·네덜란드에서 지중해까지. 치즈 이름은 대개 그 치즈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라, 나라별 성격을 알면 처음 보는 이름도 짐작이 됩니다.

치즈 이름은 거의 다 지명입니다

브리는 파리 동쪽의 지방 이름이고, 고다는 네덜란드의 도시, 체다는 잉글랜드 서남부의 협곡 마을입니다. 로크포르·파르미지아노·에멘탈도 전부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우유를 오래 두고 먹는 방법이 치즈뿐이었고, 그 방법은 마을마다 조금씩 달랐거든요. 기후가 다르고, 풀이 다르고, 키우는 가축이 달랐으니까요. 그래서 유럽 지도는 사실상 치즈 지도이기도 합니다. 이름만 알아도 그 치즈가 어떤 땅에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이름이 그대로 지도 위의 한 점인 것들이에요.

그럼 치즈 자체는 어느 나라에서 시작됐나

한 나라를 짚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얼버무리는 답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온 증거가 실제로 그렇습니다. 확인된 가장 오래된 흔적은 그릇에 남아 있어요. 폴란드 쿠야비 지역에서 나온 구멍 뚫린 토기 조각에서 약 7,000년 전의 유지방이 검출됐는데, 구멍으로 유청을 걸렀다는 뜻이라 치즈를 만들었다는 사실상 확정적인 증거로 봅니다. 비슷한 시기에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해안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어요. 2018년에 그곳 토기의 지방산을 동위원소로 분석해 기원전 5200년, 그러니까 7,200년 전의 치즈 생산을 확인했습니다.

왜 하필 토기 조각이 증거인가

치즈는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천 년 뒤까지 버티는 것은 치즈가 아니라 그것을 담았던 그릇이에요.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토기에 스며든 지방을 분석합니다. 고기 지방인지 우유 지방인지, 나아가 우유인지 치즈인지까지 탄소 동위원소 비율로 갈라낼 수 있거든요. 유청이 빠져나간 치즈는 그 비율이 조금 다르게 남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토기는 그래서 특별해요. 오늘날 치즈 공방에서 쓰는 체와 생김새가 거의 같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이 우유 지방이라면 용도는 하나뿐입니다.

우연히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사막을 건너던 상인이 송아지 위로 만든 주머니에 우유를 넣어 갔더니 도착했을 때 굳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화학적으로는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새끼 반추동물의 위에는 우유를 굳히는 효소가 들어 있고, 거기에 하루 종일의 흔들림과 사막의 열이 더해지면 우유는 굳습니다. 아마 그 비슷한 일이 여러 곳에서 여러 번 일어났을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나라'라는 질문에 답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치즈는 한 사람의 발명이 아니라 젖을 짜는 사람들이 도달하게 되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 →

프랑스 — 부드럽고 향으로 승부합니다

드골 대통령이 남겼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치즈가 246가지나 되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느냐는 푸념이었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아서, 지금은 1,000종이 넘게 헤아려집니다. 프랑스 치즈는 곰팡이와 습도를 다뤄 향을 끌어내는 쪽으로 발달했어요. 하얀 곰팡이를 겉에 피워 안쪽부터 익히거나, 동굴의 습기를 이용해 푸른곰팡이를 키우는 식입니다. 그래서 질감이 무르고 향이 앞서는 치즈가 많아요. 대신 오래 두고 먹기는 어렵습니다. 프랑스에서 치즈를 그날그날 사는 문화가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이름을 얻은 것들입니다.

이탈리아 — 갓 만든 것부터 몇 해 묵힌 것까지

폭이 가장 넓습니다. 오늘 만들어 오늘 먹는 생치즈가 있는가 하면, 몇 년을 묵혀 망치로 두드려 검사하는 초경성 치즈도 있어요. 파르미지아노는 실제로 숙성고에서 전문가가 작은 망치로 두들겨 소리를 듣고 합격 여부를 판정합니다. 속에 균열이 있으면 소리가 다르게 나거든요. 요리에 쓰는 치즈와 그대로 먹는 치즈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북쪽은 소젖, 남쪽으로 갈수록 양젖과 물소젖이 늘어나는 것도 기후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예요.

갓 만든 것부터 몇 해 묵힌 것까지 고루 있어요.

스위스 — 산에서 만들어 오래 가게

산악 지대에서 여름에 짠 젖을 겨울까지 두고 먹어야 했기 때문에, 크고 단단하고 오래 가는 치즈로 굳어졌습니다. 알프스의 여름 목장에서 만든 치즈를 가을에 사람과 소가 함께 마을로 내려오며 지고 내려왔어요. 그러니 무겁고 크고 튼튼해야 했죠. 숙성 중 생긴 가스가 갇혀 구멍이 나기도 하고, 잘 녹는 성질 덕에 퐁뒤와 라클렛 같은 요리가 나왔습니다. 스위스 치즈가 대체로 순하고 고소한 것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과 향을 절제한 결과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것들입니다.

영국 — 단단하고 고소하게

천으로 감싸 눌러 숙성시키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 단단하고 부스러지는 질감이 특징입니다. 체다라는 이름은 잉글랜드 서남부의 체다 협곡에서 왔는데, 그 협곡의 동굴이 온도와 습도가 일정해 천연 숙성고 역할을 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이름이 법으로 보호되지 않아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치즈 이름이 됐습니다. 크리스마스에 포트와인과 함께 내는 블루치즈도 영국 것이고, 빵과 치즈와 피클로 차리는 점심 문화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영국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갈래예요.

네덜란드 — 순하고 다루기 쉽게

무역으로 팔기 위해 만들던 치즈라 튀지 않고 오래 가는 쪽으로 발달했습니다. 왁스를 입혀 동그랗게 만든 모양이 상징이 됐어요. 배에 싣고 몇 달을 가도 상하지 않아야 했으니까요. 어릴 때는 순하고, 오래 묵히면 캐러멜 같은 단맛과 아삭한 결정이 생깁니다. 알크마르 같은 도시에서는 지금도 전통 방식의 치즈 시장이 관광 행사로 열립니다. 흰 옷을 입은 운반꾼들이 나무 들것에 치즈를 얹어 나르는 장면이 그것이에요.

나라 이름을 대신하다시피 하는 치즈입니다.

스페인 — 건조한 고원의 양젖 치즈

라만차 고원은 여름이 뜨겁고 겨울이 춥고 물이 귀합니다. 소를 키우기 어려운 대신 양은 잘 견뎠어요. 그래서 스페인 치즈의 얼굴은 눌러서 단단하게 숙성한 양젖 치즈입니다. 표면에 갈대 무늬 같은 지그재그 자국이 있는데, 옛날에 풀로 엮은 틀에 넣어 눌렀던 흔적이 그대로 규격이 된 겁니다. 숙성이 짧으면 우유맛이 남고, 길어지면 견과 같은 고소함과 짠맛이 진해져요. 스페인 사람들은 여기에 모과 젤리를 곁들여 먹습니다.

고원의 양젖에서 나온 치즈예요.

그리스 — 치즈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 중 하나

의외의 사실인데, 한 사람이 1년에 먹는 치즈 양으로 따지면 그리스가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1인당 27kg이 넘어요.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에요.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소금물에 담가 파는 하얀 양젖 치즈입니다. 샐러드에 큼직하게 얹어 내는 그 치즈예요. 더운 기후에서 치즈를 오래 두려면 소금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고, 그 방식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짠맛이 강하지만 올리브유와 토마토를 만나면 균형이 맞습니다.

이 나라 식탁의 기본입니다.

키프로스 — 구워 먹으라고 만든 치즈

지중해 동쪽 섬나라 키프로스에는 열을 받아도 녹지 않는 치즈가 있습니다. 만들 때 뜨거운 유청에 한 번 삶아내기 때문에 단백질이 미리 단단히 엉겨 있거든요. 그래서 프라이팬에 올리면 겉만 노릇해지고 속은 쫄깃하게 남습니다. 더운 지역에서 냉장 없이 두려면 이런 방식이 유리했어요. 지금은 유럽 전역에서 채식 요리의 단백질원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굽는 치즈라는 발상 자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꽤 놀랍습니다.

구울 것을 전제로 만든 치즈예요.

지형이 치즈를 정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산에서는 크고 단단한 치즈가, 더운 곳에서는 짜고 소금물에 담근 치즈가, 습하고 온화한 곳에서는 부드럽고 향이 센 치즈가 나옵니다. 소를 먹일 풀이 넉넉한 평야에서는 소젖 치즈가, 척박한 산과 고원에서는 양과 염소의 젖으로 만든 치즈가 나오고요. 처음 보는 치즈를 만났을 때 원산지만 확인해도 대략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알프스 이름이 보이면 단단하고 고소하겠구나, 지중해 섬 이름이 보이면 짜겠구나 하는 식으로요.

유럽 밖에도 치즈의 세계가 있습니다

치즈 이야기가 유럽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남아시아의 파니르는 우유를 레몬이나 식초로 굳혀 만드는 치즈라 열을 받아도 녹지 않고, 그래서 카레에 깍둑썰어 넣어도 형태가 남아요. 벵골 지방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더 무르게 만든 체나로 디저트를 빚습니다. 멕시코에는 오아하카 치즈가 있는데, 이건 놀랍게도 모짜렐라와 같은 방식으로 늘여 만들어 실처럼 찢어집니다. 19세기에 한 소녀가 우유를 잘못 굳혔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 수습하려던 데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짜고 단단한 코티하는 갈아 뿌리는 용도라 현지에서 멕시코의 파르미지아노라고 불립니다. 브라질 북동부의 케이주 코알류는 더운 기후에서 버티도록 만들어져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워 팔고, 중동의 라브네는 요구르트의 물을 빼 만든 치즈에 가까운 물건이에요. 미국에도 자기 치즈가 있습니다. 몬터레이잭은 18세기 캘리포니아 선교회에서 시작됐고, 콜비는 1874년 위스콘신의 같은 이름 마을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도 치즈의 역사가 있습니다

전북 임실은 한국 치즈의 출발점입니다. 벨기에에서 온 지정환 신부가 1960년대에 임실 성당에 부임했는데, 가난한 산골 마을에 소득이 될 일을 찾다가 산양을 기르는 농가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1967년에 다섯 평 남짓한 건물과 12미터짜리 숙성 터널로 국내 첫 치즈 공장을 세웠습니다. 유럽 치즈 공장에 편지를 보내 제법을 묻고, 실패를 거듭한 끝에 이듬해 까망베르를 만들어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마트에서 국산 치즈를 집을 수 있는 것은 그 시작에 빚지고 있어요. 그는 2019년에 세상을 떠났고, 임실에는 지금도 치즈 산업이 남아 있습니다.

임실에서 처음 만들어낸 것이 이 치즈였습니다.

참고